곧 월드컵 시즌이다.
월드컵 시즌이 돌아오니까 문득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생각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겠지만, 나 또한 경기 결과와 달리 여러가지 추억이 있다.
한국에 있지 않다 보니 거리 응원전이라는 걸 해보지도 못했고, 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눈치를 봐가며 경기가 있는 날은 일찍 집에 들어오려고 노력했다. 일본 회사다 보니 일본팀이 경기 있는 날은 일본인 상사와 같이 근처 주점이나 회사에서 보면 됐지만, 한국팀 경기는 나 혼자만 관심이 있는 일이라 회사에서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일찍 집에 오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결혼을 했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가 아닌, 아내와 같이 볼 수 있긴 했지만...그때 우리가 월드컵을 응원하면서 가장 곤란했던 것은 같이 응원할 사람이 많고 적은 것 보다, 집 자체의 문제가 제일 컸다.
우리가 집을 얻은 곳은 '아파트'(アパート)라고 해서 여러세대가 사는 목조건물이었는데 일본에서 '아파트'라고 하면 한국과 달리 가장 낮은 수준의 집을 뜻한다.
이런 목조건물의 특징은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윗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들린다. 청소기를 돌리면 그 소음과 바닥 끄는 소리도 나고, 심지어 옆집 아저씨의 핸드폰 진동 소리도 우리집까지 울릴 때가 있었다.
- 2002년 당시 살던 집/ 겉은 멀쩡하다;;
만약, 목조건물이 그렇게 소음이 심한 곳이었다면 애당초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그 집을 구할 때는 교토에서 2박 3일간 도쿄로 올라와 짧은 시간내에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겉보기에 대충 괜찮다 싶은 집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사실 유학생 신분인 내게 6만엔 이하 집은 도쿄에서 아파트 밖에 없긴 했다.
그러니까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첫승을 따내던 폴란드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29인치 TV 앞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숨죽이며 경기를 봤다. 히딩크가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갖고 여러가지 실험을 한 뒤 새로운 한국팀이 얼마나 강팀으로 변모해있는지 몰랐을 그 때, 황선홍의 첫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터져나오는 함성.
그러나 우리 둘은 입을 막았다. 밤이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집의 방음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뻔히 알고 있는 마당에 '와!!! 골!!!! 대한민국'이라고 소리칠 수는 없었다.
그냥 아내와 끌어안고 기뻐할 수 밖에. 당시 아내는 임신 8개월째였기 때문에 뱃속의 아기까지 포함하면 3명이 마음속으로만 응원했다.
그렇게 미국전, 포루투칼전, 이탈리아, 스페인전까지.
전부 입을 틀어막고 응원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던 독일전에서는 오랜만에 집을 빠져나와 아내가 다니는 교회로 갔다. 처음으로 집단 응원에 참가한 것이다. 교회에서는 대형스크린을 두고 사람들이 3-40명 모여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고, 아내의 친한 친구는 얼굴에 태극기를 그린 페이스페인팅까지 했다.
결과는 0-1. 결승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니까 속상하긴 했다.
'역시 내가 집에서 아내랑 단둘이서 볼 때는 이겼는데 이렇게 나와서 응원하니까 지는 군'이라고 자책(?)도 했다;; (사실 체력적으로 한계가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3,4위전이 있었지만 그렇게 한일 월드컵은 끝났다.
그때 이후로 우리가 이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목조건물이냐 아니냐가 됐다. 8월에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고려해서 아기 울음소리가 옆집까지 들리는 것도 꽤 신경쓰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조건물이 다 후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단독주택은 대부분 목조로 지어진다. 한 가족만 한 건물에 살면 문제가 별로 없다. 다만 아파트는 여러 세대가 나무로 지어진 건물에 모여살다 보니, 겉보기에는 멀쩡한 집이지만 실은 판자집(?)과 다름 없다는 게 문제일 뿐.
다행히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맨션에 살아서 옆집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우리집으로 불러 응원을 하기도 했다.
휴...외국에서는 응원하기도 쉽지 않다니까.
앞으로 며칠 후면 온 국민이 한국 대표팀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눈을 고정시키고 지켜볼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리스전과 아르헨티나전까지는 지상파로 볼 수 있지만, 나이지리아전은 볼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2006년에도 프랑스전은 위성방송이 나오는 집으로 심야원정을 가서 본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한국팀, 화이팅!
그런데, 아내에게 그때 일을 이야기하자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솔직히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때 나 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아무리 소리를 못지른다고 임신 8개월인 나를 그렇게 세게 껴안으면 어떡하냐!"
- 당시 옆집은 와세다 대학원생이었던 한국인 선배부부가 살았다.
- 2006년에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기 전에 찾아가서 찍어둔 사진, 집이 비어 있다.
월드컵 시즌이 돌아오니까 문득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생각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겠지만, 나 또한 경기 결과와 달리 여러가지 추억이 있다.
한국에 있지 않다 보니 거리 응원전이라는 걸 해보지도 못했고, 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눈치를 봐가며 경기가 있는 날은 일찍 집에 들어오려고 노력했다. 일본 회사다 보니 일본팀이 경기 있는 날은 일본인 상사와 같이 근처 주점이나 회사에서 보면 됐지만, 한국팀 경기는 나 혼자만 관심이 있는 일이라 회사에서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일찍 집에 오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결혼을 했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가 아닌, 아내와 같이 볼 수 있긴 했지만...그때 우리가 월드컵을 응원하면서 가장 곤란했던 것은 같이 응원할 사람이 많고 적은 것 보다, 집 자체의 문제가 제일 컸다.
우리가 집을 얻은 곳은 '아파트'(アパート)라고 해서 여러세대가 사는 목조건물이었는데 일본에서 '아파트'라고 하면 한국과 달리 가장 낮은 수준의 집을 뜻한다.
이런 목조건물의 특징은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윗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들린다. 청소기를 돌리면 그 소음과 바닥 끄는 소리도 나고, 심지어 옆집 아저씨의 핸드폰 진동 소리도 우리집까지 울릴 때가 있었다.
- 2002년 당시 살던 집/ 겉은 멀쩡하다;;
만약, 목조건물이 그렇게 소음이 심한 곳이었다면 애당초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그 집을 구할 때는 교토에서 2박 3일간 도쿄로 올라와 짧은 시간내에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겉보기에 대충 괜찮다 싶은 집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사실 유학생 신분인 내게 6만엔 이하 집은 도쿄에서 아파트 밖에 없긴 했다.
그러니까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첫승을 따내던 폴란드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29인치 TV 앞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숨죽이며 경기를 봤다. 히딩크가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갖고 여러가지 실험을 한 뒤 새로운 한국팀이 얼마나 강팀으로 변모해있는지 몰랐을 그 때, 황선홍의 첫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터져나오는 함성.
그러나 우리 둘은 입을 막았다. 밤이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집의 방음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뻔히 알고 있는 마당에 '와!!! 골!!!! 대한민국'이라고 소리칠 수는 없었다.
그냥 아내와 끌어안고 기뻐할 수 밖에. 당시 아내는 임신 8개월째였기 때문에 뱃속의 아기까지 포함하면 3명이 마음속으로만 응원했다.
그렇게 미국전, 포루투칼전, 이탈리아, 스페인전까지.
전부 입을 틀어막고 응원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던 독일전에서는 오랜만에 집을 빠져나와 아내가 다니는 교회로 갔다. 처음으로 집단 응원에 참가한 것이다. 교회에서는 대형스크린을 두고 사람들이 3-40명 모여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었고, 아내의 친한 친구는 얼굴에 태극기를 그린 페이스페인팅까지 했다.
결과는 0-1. 결승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니까 속상하긴 했다.
'역시 내가 집에서 아내랑 단둘이서 볼 때는 이겼는데 이렇게 나와서 응원하니까 지는 군'이라고 자책(?)도 했다;; (사실 체력적으로 한계가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3,4위전이 있었지만 그렇게 한일 월드컵은 끝났다.
그때 이후로 우리가 이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목조건물이냐 아니냐가 됐다. 8월에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고려해서 아기 울음소리가 옆집까지 들리는 것도 꽤 신경쓰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조건물이 다 후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단독주택은 대부분 목조로 지어진다. 한 가족만 한 건물에 살면 문제가 별로 없다. 다만 아파트는 여러 세대가 나무로 지어진 건물에 모여살다 보니, 겉보기에는 멀쩡한 집이지만 실은 판자집(?)과 다름 없다는 게 문제일 뿐.
다행히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맨션에 살아서 옆집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우리집으로 불러 응원을 하기도 했다.
휴...외국에서는 응원하기도 쉽지 않다니까.
앞으로 며칠 후면 온 국민이 한국 대표팀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눈을 고정시키고 지켜볼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리스전과 아르헨티나전까지는 지상파로 볼 수 있지만, 나이지리아전은 볼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2006년에도 프랑스전은 위성방송이 나오는 집으로 심야원정을 가서 본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한국팀, 화이팅!
그런데, 아내에게 그때 일을 이야기하자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솔직히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때 나 목 부러지는 줄 알았다. 아무리 소리를 못지른다고 임신 8개월인 나를 그렇게 세게 껴안으면 어떡하냐!"
- 당시 옆집은 와세다 대학원생이었던 한국인 선배부부가 살았다.
- 2006년에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기 전에 찾아가서 찍어둔 사진, 집이 비어 있다.
(출처:당그니의일본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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