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韓 전세, 日 월세보다 낫다 할 수 있나

가자 세계로 2010. 4. 12. 22:38

2000년 9월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온 나는 지난 10년 내내 한국의 전세제도가 일본의 월세제도 보다 훨씬 낫다고 줄곧 생각해오고 있었다.

2001년부터 아내와 살림을 합친 뒤 도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다달이 내는 월세가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전세제도라도 있다면 목돈을 부모님이나 누군가에게 빌려서 내고, 그러면 다달이 내는 월세가 사라지는 생활비가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도쿄에서 세가족이 방 2개에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하고 살려면 최소한 12만엔은 줘야한다. 한달 월세만 140만원 정도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제 저녁 경향신문의 '주거의 사회학'이란 기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주거의 사회학은 40대 자가 보유자 vs 40대 전세 거주자 등 집 보유 여부에 따라 한국사회에서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2006년에 내가 잠깐 한국에 살러 들어갔을 때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게됐다.

2006년에 내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는 부동산 값이 몇 배 이상 뛴 상태였다. 내 후배는 빚을 얻어서 집을 사곤 했는데, '집은 원래 빚을 얻어서 사는 것'이라며, 빚을 다 갚지 않아도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팔고 더 좋은 데로 이사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내 나이 또래들은 다들 어떻게든 빚을 얻어 집을 사는 시기였다. 집이 없으면 왠지 위축이 되는 분위기. 형제네 집에 놀러가도 마찬가지였다. 나야 잠시 일년간 한국에 살러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고, 그런 분위기 때문인 것도 있어서 정확하게 1년 3개월만에 도쿄로 돌아왔다.

일본에서는 월세를 내고 살아도 집이 없다고 위축되거나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에서는 왜 그랬을까.

일본은 전세가 없기 떄문에 세입자가 되느냐 론을 끼고 집을 사느냐는 두가지 선택밖에 없다. 그리고 어차피 집을 사도 값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재산 증식의 수단이라기 보다는 마이홈을 마련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일본에서는 세입자가 불리한 점이 많다. 새로 이사를 하게 되면 4-50만엔의 초기 비용이 들고, 민간 주택이라면 2년마다 한번 씩 한달치 월세에 해당하는 갱신료를 내야되기 떄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재개발, 재건축이라는 명목하에 폭력적으로 세입자를 내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깨진 이래 재개발이 많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만약 월세 세입자를 이사를 가게 하려면 상당한 액수의 이사비용과 보상을 해주어한다.

예전에 알고 지낸 사람은 도심을 20-30분 거리에 갈 수 있는 지역의 역 앞 맨션에서 살았는데, 5층으로 낡고 계단이 없었기 때문에 이 주택을 관리하는 공단측은 재건축을 해서 보다 높은 건물로 올려서 더 많은 세대수입을 바라고 있었다. 공단측은 세입자들에게 이사 비용으로 30만엔(350만원), 보상비로 100만엔(1200만원) 정도를 제시했다. 이사 비용은 이사하면 없어진다 쳐도 100만엔은 갑자기 들어온  수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은 노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기 때문에 보상비를 준다고 해도 이사를 가지 않는다는 세입자가 많아서 벌써 5년째 재건축에 손도 못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그 사람은 100만엔을 받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리고 언제 재건축이 될지 몰라서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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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에 대해서 보다 더 이야기하면 한국의 전세는 분명 2년동안 목돈이 들어가긴 하지만 매달 들어가는 월세보다 매력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2년간 수천만원에서 1억이 넘는 목돈이 묶여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고 집을 얻게 되면 몇천만원이나 되는 목돈이 필요 없다. 월세의 2-3배 되는 보증금과 다달이 낼 수 있는 월세만 있으면 된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또, 한국은 부동산 시장에 따라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집주인의 성화로 이사철만 되면 강제로 살던 곳을 떠나기 일쑤지만 일본에서는 버블이 붕괴된 이후로 2년 계약이 끝났다 해서 월세을 올려달라거나 하는 요구는 없다. 그래서 몇십년간 월세로만 사는 세입자도 꽤 되는 편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경기불황으로 무리하게 론을 끼고 집을 구매했다가 불황 등으로 론을 갚지 못하고 집을 처분해야되는 론 난민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사람들 입장에서는 마이홈도 30년에 걸쳐 장기 상환해야하는 빚인 것이다.

또 집을 사게 되면 부담해야하는 수선비(일본은 이 집 수리비가 상당히 비쌈), 전근 등 생활환경이 변해도 쉽게 팔지 못하고 오랫동안 한곳에서 살아야한다는 리스크 등으로 젋은 세대들은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있냐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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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도 자기집을 소유한 사람에게 대출 등의 혜택이 더 많은 것도 있다. 그러나, 자기의 의지와 상관 없이 급격하게 전세가 몇천만원씩 오르거나 세입자가 쫓겨나는 일이 드물다는 점. 부동산을 통해 관리를 받기 때문에 세입자라고 해서 늘 집주인의 신경을 살면서 살 필요가 없다는 점은 한국의 전세 제도가 일본의 월세가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얼마 전 도쿄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다마 뉴타운'에서 처음으로 재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다마 뉴타운이란 고도경제성장기에 만들어진 신도시인데 지금은 낙후되어 실버타운으로까지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건물이 너무 오래되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등의 문제로 재건축 요청이 많았는데 올해 들어서 드디어 재건축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세입지는 잠시 이사를 가 있기는 해야하나, 재건축 비용을 하나도 물지 않아도 된다. 재건축을 통해 주택수를 두배로 늘리고 그 이익금으로 주택을 판매함으로써 현 거주자의 부담을 없앴기 때문이다. (다마 뉴타운 "재건축에 따른 거주자 추가 비용 제로!")

어느나라나 자기 나름의 기준과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집 때문에 사람들이 이리 저리 떠밀리듯 이사를 해야하는 현 한국의 재개발, 부동산 버블은 결코 좋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월급의 상당 부분이 막대한 월세로 사라져버리는 일본의 월세 시스템에 그리 찬성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가 보유자와 세입자간의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는 느낌은 받지 않다는 점에서 일본의 월세가 무조건 한국의 전세보다 떨어져 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게 만든다.

용산참사도 그런 개발 이익을 위한 폭력적 철거가 빚어낸 참극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다.

 

 

 

 

 

 

 

 

 

 

 

 

(출처:당그니의일본표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