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이 노래 때문에 분위기 망치는 건 아닐까’ ‘아무도 노래를 안하면 어색한데 빨리 고르자’ ‘요즘 노래를 잘 모르는데 망신당하지 말고 아는 노래로 하자’
회식자리나 어떤 모임 자리의 노래방에서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했을 고민이다. 90년대 노래방이 처음 생기고 20년,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놀이 문화의 하나이며 회식자리 필수 코스로도 자리 잡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다수 있다. 이런 생각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은 모양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발 빠르게 캐치해 일본에서 최근 일인용 가라오케 전문점이 최초로 도쿄에서 오픈했다. 지난달 25일 오픈하여 한창 성업 중이라는 ‘완카라(ワンカラ, 혼자만의 가라오케라는 뜻)’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점점 줄어드는 일본 가라오케 시장의 새로운 활로로 ‘고시다카’라는 가라오케 운영 기업이 의욕적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고, 과연 일인용 노래방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노래방을 혼자 간다는 것에 왠지 모를 위화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결과, 의외로 혼자 노래방을 자주 가거나 혼자만의 노래부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사람이 많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직접 체험도 해보고 그쪽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평일 낮 시간을 이용하여 다녀오기로 했다.
'완카라' 일인용 노래방은 야마노테 선 간다 역 동쪽 출구로 나와서 바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금은 낡은 건물 외관과 작은 간판 탓에 찾기가 쉽지 않다. 총 24개의 방이 있는 이곳은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실내 디자인으로 남성과 여성의 파트를 따로 구분하고 있었다. SF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우주복 유니폼을 입은 점원이 “손님, 지금 만실이어서 약 80분 정도 기다리셔야 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라며 다가와 안내했다. 얼마 전, '완카라'의 본사 측에 취재를 신청했다가, 취재 연기 요청을 받았다. 연말연시라 바빠서 취재가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1월 말에나 취재가 된단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개인적 판단으로 취재자로서가 아니라, 일반 이용자 신분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취재신청 없이 막무가내로 오긴 했지만, 80분이나 대기 시간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디서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본인의 문화는 4년 동안 봐온 모습이지만 아직도 특이하게 다가온다.
대기실은 이미 만원이었다.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즐기는 젊은 남자부터 양복 차림에 책을 보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중년의 남성,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10대로 보이는 여성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곳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열흘 전에 와 봤고 오늘은 시간이 남아 지나던 길에 들렸다" 점잖은 양복차림에 신문을 읽으며 기다리는 아베(42) 씨는 벌써 40분째 대기 중이라고 한다. 서로 대기시간의 무료함도 달랠 겸 아베 씨에게 이곳 '완카라'의 매력을 물어봤다. "역시 가장 큰 매력은 천천히 나만의 노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남의 눈치 안 보고 신 나게 때로는 분위기 잡고 즐길 수 있어서 다시 찾아왔다" 아베 씨는 우에노에서 자신이 경영하는 건설 설계회사에 다니고 있다. 가끔 이렇게 시간이 나는 날이면 가라오케로 가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 보통은 혼자 가기 민망해서 동료들과 회식 핑계로 가는데 분위기 때문에 마음껏 못 불러 항상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마음껏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은 반가운데, 너무 기다리면 곤란한데……." 아베 씨는 55분 정도를 기다린 후에야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본 언론에 보도된 ‘완카라’ 관련 기사에서는 일인용 노래방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누가 듣고 있다고 의식할 필요가 없다. 2. 어떤 것을 선곡해도 눈치가 안 보인다. 3. 흥을 돋우기 위한 노래를 하지 않아도 좋다. 4. 짧은 시간에 많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혼자 노래방 가기를 즐긴다는 주변의 한국 사람은 "다 같이 요란하게 노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맘껏 자기 감정에 취해 노래부르는게 좋다"고도 했다. 이제 직접 체험해 볼 차례이다. 정말 위와 같은 매력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장장 7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예정보다 10분 일찍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실내 콘셉트에 맞춰 이곳에서는 노래방 부스를 우주선의 '피트'로 부르고 있었다. 내부 역시 우주선 조종석을 이미지화한 듯했다. 1평 남짓한 크기에 높이는 2.5m 정도로 조금은 답답한 느낌도 들었지만, 혼자 들어가기에는 충분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문가용 마이크(?)였다. 가수들이 녹음할 때 쓰는 그런 마이크가 중앙에 있었다. 또한 음악과 자신의 목소리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음향기기도 오른편에 놓여 있다. 물론 녹음이나 녹화도 가능했다. 피트 중앙 천장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자신이 부르는 것을 그대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으로 공유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었다. 받아온 헤드셋을 통해 들리는 음질은 기대 이상이었다. 음악과 함께 나오는 내 목소리가 아무런 잡음 없이 선명하게 들려 처음으로 자신의 본연의 목소리와 대면한 듯한 기분이었다.
노래는 액정이 달린 리모컨으로 입력한다. 한국어로도 전환할 수 있어서 얼마나 한국 노래가 수록됐는지 확인해봤다. 일단 내가 아는 최신곡 '본능적으로'와 90년대 노래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를 검색해봤다. 두 곡 모두 있었다. 가수 이름으로 찾는 서비스에서도 한국 가수 대부분이 올라와 있다.
가수처럼 헤드셋을 끼고 전문가용 마이크 앞에 서서 몇 곡을 불러 본 결과,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내 음악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 번인가 크고 민망한 목소리를 낸 후에는 자신도 놀라 밖으로 들리지는 않았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완전 방음 공간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던 말이 기억났다. 부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취소도 했다. 회식자리에서 부르는 트롯트 대신 분위기 있는 노래를 부르며 자기 멋에 취해도 봤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시스템은, 인기 가수와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인기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모니터에 나와서 그 가수의 노래에 맞춰 내 목소리를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아쉽게 AKB48의 곡들이 대부분이었고 한국 노래나 가수의 서비스는 없었다.
1시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이 노래방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노래를 부르며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는 아베 씨의 말이 떠올랐다. 계산하는 사이에도 연신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생각해보면 한 번도 노래방을 혼자 즐기는 놀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동료들과 음주 후에 가거나 했기 때문에 다 같이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체험해 본 결과,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업종으로 잠시 화제가 될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소비자의 니즈를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일본 문화의 폐쇄적 성격, 비사회적인 일본인들만이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속단하기보다는 새로운 문화의 흐름으로 바라보고 비지니즈 찬스로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완카라’의 본사 고시다카는 내년 시장 반응이 괜찮을 경우, 바로 2호점을 시작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최소한 오늘과 같은 반응이라면 2호점 오픈은 결정적일 것이다. 이용요금은 오후 12~18시까지 시간당 600엔, 18시~다음날 6시까지 시간당 1,100엔이다. 헤드셋 대여비는 별도. |
(출처:제이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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