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근대사에 있어서 1800년대의 풍운아가 사카모토 료마라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IT산업의 쓰나미를 몰고 다니는 이는 역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다. 일본에서 그가 움직이면 늘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인다. 얼마전에는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4개현에 100억 엔이라는 거액의 재해연금을 내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원전폭발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제는 태양에너지 활용 친환경운동가로 변신, 일본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에 그의 일대기를 매일 제이피 뉴스에서 연재하기로 한다.
손정의가 은행으로부터 1억 엔의 융자를 받기 위해 일본 유수의 전자메이커 샤프사의 사사키 전무를 찾아갔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손정의’라는 인물의 진가를 일본에서 가장 먼저 알아본 이가 바로 사사키 전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7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손정의가 열여섯 살의 나이에 고등학교 2학년을 자퇴하고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규슈에서도 대학진학률이 높은 곳으로 유명한 구루메대학(久留米大学)부설 고등학교. 명문고교였다.
이 학교에서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미국으로 언어연수를 떠났다. 손정의도 이 프로그램의 일원이 되어 미국에 갔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이 4주간의 단기연수기간동안 손정의는 아메리카 드림을 보았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과감하게 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자, 그의 부모는 물론, 학교담임, 하다못해 친구들까지 모두 반대했다. 미국에 연고자 한 명 없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하지만 한번 결심하면 절대로 물러설 줄 모르는 그는, 마지막까지 부모와 학교선생님을 설득,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다.
훗날, 그는 닛케이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유학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읽었던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 미국유학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카모토 료마(1835-1867)는, 260여년 간 지속된 도쿠가와(요시노부) 막부 체제를 마감하게 하고, 정권을 메이지왕에게 돌려주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그리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근대화의 물꼬를 트게 해준,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다. 작년에는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바로 이 사카모토 료마를 손정의는 인생의 구심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정치인과 유명 문화인들이 모여 자선모금의 일환으로 연극을 할 때도, 그는 료마역을 자청해서 연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카모토 료마는 손정의의 강렬한 멘토가 되었다. 그래서 손정의를 아는 웬만한 일본인은 그가 얼마만큼 료마에 매료되었는지를 잘 안다.
손정의는 언어연수를 다녀온 후, 유학을 떠날 때까지 집중적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어학연수 때 선생님이었던 미국인에게 현지 보증인 겸 후견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써서 미국에 보냈다.
미국에 가서도 그는 여러 에피소드를 남겼다. 일찌감치 기업가적인 자질을 보였다는 고교졸업검정시험 에피소드. 제아무리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그로서는, 출제된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대학입학시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응시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어떡하든 그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여기서 그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 된다. 즉 외국인인 수험생(손정의 자신)을 위해 일본어로 번역된 문제지가 없으니 불평등하다는 것. 따라서 영어사전을 지참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더불어 일본어로 해석한다면 반드시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큰소리까지 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시험감독관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면서 상사에게 보고하고, 그 상사는 또다시 그 위의 상사에게 보고. 그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마침내 사전반입이 허락됐다. 즉시 도서실로부터 사전이 공수됐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전을 찾아가며 시험문제를 풀다 보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손정의는 또다시 시간연장을 주장했다. 이번에는 주지사에게까지 전화를 했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안되는지 해석을 받기 위함이었다. 주지사는 사전반입까지 허락한 마당에 ‘적당한 시간까지 연장 해준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문제는 이 ‘적당한 시간’이었다. 손정의가 생각한 ‘적당한 시간’은 바로 출제된 문제를 다 푼 그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이미 밖은 어두컴컴한 밤으로 변해 있었다. 결국 그는 이 시험에 합격했다.
일본언론은 이때부터 그가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을 상대로 ‘협상’을 제대로 해냈다고 극찬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미국유학 1년여만에 남은 고교과정을 건너뛰고 2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4년제 대학은 고교과정을 생략한 탓에 자격이 안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만의 목표를 세웠다. 사업가가 되겠다는 것. 그와 관련된 '인생50년 계획'도 설정했다.
‘20대에 이름을 널리 알릴 것’ ‘30대에는 최저 사업자금 1000억 엔을 모을 것’ ‘40대에는 큰 승부를 걸 것’ ‘50대에는 이를 완성시킬 것’ ‘60대에는 후계자에게 승계를 할 것’
그리고 2년내내 올A학점을 받았다. 이어서 그의 공식학력이 된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경제학부 3학년에 편입했다.
▲ 아이폰4S를 홍보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 JPNews/야마모토 히로키 | |
여기서도 그는 목표를 세웠다.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업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시급 몇 달러로는 몇 년을 일해도 사업자금을 모을 수가 없다. 사업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발명을 해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 그는 하루에 한가지씩 1년 동안 발명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실천에 옮겼다. 그렇게 발명한 가짓수가 250건에 달했다.
바로 이 발명품 가운데 한가지가 오늘날 소프트뱅크의 종잣돈이 됐다.
일본 매스컴이 그에 대한 성공신화를 이야기 할 때면 교과서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음성번역기와 샤프사.’
손정의가 유학을 떠난 지 5년 후인 1978년 여름. 그는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여름방학을 이용해 일본집에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 해 여름에는 뭔가 조그만 기계 하나를 매우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왔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그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아버지가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나중에는 부자(父子)가 함께 전화번호에 해당하는 회사로 찾아갔다. 바로 마츠시타 전기였다. 하지만 마츠시타 전기에서는 보기좋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래도 그들 부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라현 텐리시(奈良縣天理市)에 있는 샤프사의 중앙연구소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샤프사의 전무이자 중앙연구소의 소장인 사사키 다다시(佐々木正)씨였다.
아버지는 아주 간곡하게 만나만 달라고 사정, 사정했다.
사사키 소장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호기심 차원에서 연구소 1층 로비에서 이들 부자를 만났다. 손정의는 사사키 소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개발한 ‘음성다국어번역기’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해 보이기도 하고,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여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사키소장은 이들 부자를 1층 로비 응접실에서 2층의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 이유는 ‘음성다국어번역기’에 대해서 아주 열정적으로, 그러면서 진지하게 설명하는 손정의의 눈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손정의가 발명한 기계는 즉시 상품으로 출시하기에는 무리였지만, 그 원리를 다른 상품에 응용할 가치는 충분했다.
마지막까지 손의 설명을 다 들은 사사키 소장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매입을 결정했다.
"어디 한번 사용해 봅시다."
그 때 사사키 소장은 손정의의 설명을 들으면서 마츠시타 전기에도 다녀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왜 그 사람 눈에 안 띄었을까?"
그 사람이란 ‘경영의 가미사마(하느님)로 불리우는 마츠시타 전기의 창업자 마츠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회장. 게다가 그 당시 마츠시타 전기에서는 샤프사를 따라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과 공동으로 자동번역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사사키소장은,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손정의의 개발품을 문전박대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아무튼 ‘음성다국어번역기’가 한눈에 ‘물건’임을 알아본 사사키 소장은 아무런 주저없이 특허권 4천만 엔을 포함, 총 1억 엔에 이 기계에 대한 기술권을 사들였다.
(계속)
(출처:제이피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