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일본 IT황제, 손정의의 삶과 일(3)

가자 세계로 2011. 12. 27. 11:11

일본 IT황제, 손정의의 삶과 일(3)
대학 시절부터 뛰어났던 손정의의 수완, 그의 창업초기

 

 

제이피뉴스 기획팀

 

 

일본근대사에 있어서 1800년대의 풍운아가 사카모토 료마라면, 19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IT산업의 쓰나미를 몰고 다니는 이는 역시 손정의 소프트뱅 회장이다. 일본에서 손회장이 움직이면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 왜냐하면 그는 일본의 현대판 풍운아이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는 3 11 동북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4개현에 100억엔이라는 재해연금을 일본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원전폭발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제는 태양에너지 활용 친환경운동가로 변신, 일본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바로 그에 대한 일대기를 매일 제이피뉴스에서 연재하기로 한다.

'1억 엔.'

1978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웬만한 중소도시에서 4,50평짜리 아파트 한 채 정도는 너끈히 살 수 있는 큰 액수였다. 그런 거금을 손정의는 발명품 하나로 손에 넣은 것이다.

샤프사의 사사키전무는 이때 처음 본 손정의의 인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성실하고 순수해 보였다. 특히 ‘음성다국어번역기’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사키 전무의 표현대로 손정의에게는 보통 사람에게 부족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우선 상대가 누구든 사람을 설득할 줄 알았다. 주위 모두가 반대하는 미국유학을 떠날 때도 그랬고, 고교졸업검정시험을 보면서 감독관을 설득해 영어사전을 반입하는, 역대 시험 중 전무후무한 관례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랬고, 생전 처음 보는 기업간부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이 개발한 상품이 어느정도 가치가 있는지 설명할 때도, 그는 ‘확신에 찬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이렇게 샤프사에 1억 엔을 받고 번역기술을 넘긴 손정의는 그 돈을 미국으로 가지고 갔다.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 가장 많이 놀란 이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손정의를 직접 지도했던 포레스터 모더 교수였다. 약관 21세의 나이에, 그것도 완제품이라고 할 수 없는 제품으로 거금 1억 엔을 받다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하긴 모-더교수가 손정의를 만난 것도 실은 그의 저돌적인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모-더교수는 원래 그 기계를 개발할 때부터 손정의를 지도하던 교수였다. 

맨처음 손정의가 아직 미완성품인 '음성다국어번역기'를 들고 일본으로 팔러 간다고 했을 때, 모더교수는 적극적으로 그를 만류했다고 한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상품도 아닐뿐더러, 아직 실험단계에 있어서 그 누구도 사주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무려 1억 엔을 받고 대기업에 팔았다는 소리를 듣고 모더교수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한편으론 내심 그런 손정의의 저돌적인 도전정신을 충분히 납득하고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대학에 편입해 온 이후, 발명품을 개발한다면서 뭔가를 매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노트에는 늘 새로운 발명품 내용으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고 한다. 

그런 비범함을 지닌 손정의였기에, 모-더교수는 내심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가 졸업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부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가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편, 샤프사로부터 1억 엔을 받은 손정의는 미국으로 돌아가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바로 앞에 사무실을 얻고 'Unison World'란 회사를 설립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일본기업에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직원도 30여명이나 됐다.

그러는 한편으로, 일본에서 인기가 떨어진 '스페이스 인 베타' 중고 게임기를 싼 값에 대량으로 미국에 들여와 커피숍에 대여, 이 역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이때부터 손정의는 일찌감치 남다른 사업수완을 보였다. 그래서였는지 현지 매스컴에서도 그의 활약을 크게 보도, 어느덧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 주변에서 전도유망한 예비발명가, 기업가로 꽤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경제학부에 재학 중인 그가 어떻게 해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는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경제학도가 아닌 컴퓨터 관련 개발자가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열일곱 살 때, 잡지에서 본 마이크로 칩의 색상 확대사진에서 어떤 계시를 받았습니다. 아주 미세한 배선이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왠지 알 수 없는, 양손 양 다리가 저리는 듯한 느낌을 맛보았습니다. 아마도 메이지의 젊은이들이 구로후네(검은배:서양의 배를 일컬음. 주로 일본의 개국을 상징할 때 많이 인용)를 본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저는 그 사진을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아이돌 여배우의 사진을 다루듯, 그렇게 소중하게 베갯속에 넣고 잔 적이 있을 정도로, 제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마이크로 칩 색상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것이다. 그때 나이 17세. 결국 컴퓨터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계속돼 약관 21세의 나이에 '음성다국어번역기' 개발이라는 발명품을 낳은 것이다.  

한편, 이 번역기를 계기로 손정의와 관계를 맺은 샤프사 사사키 전무는, 그 후 미국출장을 올 때마다 캘리포니아 대학 앞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때 사사키 전무는 학생신분으로 30여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고 사업하는 손정의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일본에 돌아와 큰일을 낼 인물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의 예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일찌감치 캠퍼스 커플로 만난 일본여성과 22세에 결혼한 손정의는, 1980년 주위의 미국 잔류 간청을 뿌리치고 졸업하자마자 회사를 정리, 고향인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그리고 1년여 동안 사업을 구상한 후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를 설립하기 전, 그는 40여 종의 사업 아이템을 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50년간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은 그 사업에서 넘버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총 25개 항목으로 나눠 자기 자신, 사업아이템, 전망 등에 대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렇게 도출된 결론이 바로 '소프트웨어' 유통 사업이었다
. 그는 자본금 2,000만 엔으로 '일본 소프트뱅크'라는 소프트웨어 유통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두 명의 아르바이트 직원도 퇴사해버리고, 구상한 사업아이템은 자금이 없고…

자신이 구상한 사업을 하려면 어떡하든 1억 엔의 자금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은행문을 두드린 것이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재일동포 3세에, 담보도 없는 새파란 젊은이에게 거금 1억 엔을 빌려주는 은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번역기 판매 때부터 계속 인연을 지속해 왔던 샤프 사 사사키 전무에게 찾아가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손정의에게 있어 사사키 전무는 오늘날 그를 있게 한 절대적인 은인이었다.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 듣도 보도 못한 자그마한 젊은이가, 채 완성도 되지 않은 자동번역기를 하나 달랑 들고 와서 열변을 토했을 때, 단박에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 가치를 인정해 1억 엔에 사 주었던 사람.

런데 이번에도 또 그를 크게 도와준 것이다. 보통 일본인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모 형제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사키 전무는 손정의의 능력 하나만을 보고 흔쾌히 자신의 집을 은행대출 담보로 내줬다.

손정의는 매년 5월 2일을 '대은인의 날'로 정해 놓고, 창업 초기에 자신을 도와줬던 은인들을 초대, 감사를 드리는 성대한 파티를 연다. 그 중심 인물이 사사키 전무임은 물론이다.  

 

 

 

(출처:제이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