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연아 vs 마오, 한일 평가 왜 이리 다른가

가자 세계로 2010. 3. 2. 21:31

"김연아 선수가 점수를 조금 많이 받은 것 아닌가요"

지난 주말,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단연 김연아의 올림픽 금메달은 화제였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한류에 빠져있는 일본사람들이지만, 역시 국가 대항이 되면 아사다 마오를 응원하게 된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 운명의 올림픽 피겨 프리 프로그램.

일본 언론은 시합전부터 어떻게 하면 아사다 선수가 김연아 선수를 이길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었다. 실수는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게 조건. 그러나 아사다 선수는 김연아 선수의 완벽한 연기 후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설령 아사다가 완벽했다하더라도 금메달은 김연아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경기 후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은 아사다를 인터뷰했고, 나는 그 내용을 재빨리 기사화해서 포털사이트에 보냈다. 한국의 대부분 언론이 김연아 이야기를 주로 다룰 것이라는 생각과, 라이벌이라고 불렸던 아사다의 이야기도 들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올림픽이 끝나는 마당에 고생한 아사다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글은 보내자마자 사이트(http://jpnews.kr)가 마비될 정도로 트래픽이 폭주했다. 순식간에 검색어 1위가 '아사다 마오의 눈물'이 됐다. 



그런데, 댓글이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김연가 아사다를 이긴 마당에 "그래, 마오도 고생했다" 이런 반응이 아니라, 아사다가 점수를 퍼받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사다는 "스스로에게 분하고, 속상하다. 납득이 안간다"고 이야기했으나,  한국 네티즌들은 "오히려 마오가 실수와 그런 트리플 악셀로 130점 넘게 받다니 그게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이었다.

한편, 김연아 선수의 일본 반응은 쇼트 때부터 이미 나와 있었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은 "스포츠가 아니라, 그냥 표현력이 풍부한 쇼"라는 것이다. 프리에서 아사다가 완벽 연기를 했음에도 김연아가 4.5점이나 앞선 것에 대해 대다수의 일본 네티즌들은 '아사다가 고난도 기술을 성공했는데,왜 김연아가 점수를 더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대세였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 네티즌: 기술은 아사다가 더 높고 어려운 것을 시도하며, 스포츠 정신이 있는 반면, 김연아 안정적으로 무리하지 않은 기술과 표현력으로 점수를 벌어들인다는 것이다.

한국 네티즌: 김연아의 기술 및 연기는 이미 아사다와 비교 할 수 없는 차원이며, 아사다의 기술은 속임수라는 것이다.


이렇게 연아와 마오에 대해 양국 네티즌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아사다의 시합 후 인터뷰에 격려 보다는 사람들의 비난 댓글이 더 많이 달렸을까.

어제 새벽 SBS 피겨 실황 녹화 동영상을 보고 비로소 수수께끼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방송으로 프리 실황을 보니까,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에 대해 회전수가 부족하다며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수가 발표된 다음에 너무 많이 받았다고 성화였다.

그러나, 일본 방송에서는 마오의 트리플 악셀이 회전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김연아 선수의 첫번째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 두번째가 회전수 부족이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었다.

결국 각 나라의 방송국이 자국 선수에게 유리한 쪽으로 아나운싱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일본방송만 보는 일본인들은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끼고, 오히려 고난도 기술을 어렵게 소화해낸 아사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게 된다. 반면, 김연아는 특별한 기술은 없는 것 같고 그냥 표현력과 연기력만 뛰어나다고 느끼게 된다.

일본 방송은 김연아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이 아사다가 뛰는 트리플 악셀-더블 토룹 보다 어렵다는 내용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트리플 악셀'이 드래곤볼 '가메하메파(에네르기파)'처럼 필살기로 인식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휴일 내내 김연아 및 아사다의 올림픽 프리 동영상을 몇번이고 다시 보았다. 돌려보니 두 사람에게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김연아의 프리는 일본의 빙속 영웅 시미즈 히로야스가 말했듯이 빠른 스케이팅과 대중을 압도하는 연기력, 스피디한 점프가 뿜어내는 상쾌함이 있었다. 한마디로 시합을 넘어선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아사다는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전쟁 치루듯이 피겨를 하고 있었다. 특히 트리플 악셀을 뛸 때는 역기를 들어올리듯한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시합 당일날 생중계를 보면서 단순히 실수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볼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라이벌이라고도 하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차이는 대체 어디서 벌어진 것일까. 우선 올림픽을 위한 준비의 차이를 들 수 있다.

김연아는 2009년부터 올림픽에서 선보일 연기를 모두 마무리짓고 완성도를 높이고 있었고, 이미 끝없이 세계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브라이언 오서와 데이빗 윌슨이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김연아가 가지고 있는 실력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그녀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김연아가 올림픽 쇼트 연기 후 음악 해석 부분에서 8.5점을 받았다는 것은 기술 문제는 이미 끝내고 이미 연기로 곡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반면, 아사다는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 타라소바 코치와 함께 하지 못했고, 연기를 펼칠 곡도 그녀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곡이어서 전부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트리플 악셀. 김연아를 이기기 위해서는 기초점이 높은 기술을 쓸 수 밖에 없었으나,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올림픽에서 과연 성공시킬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 정도면 이미 링 위에 올라가기 전부터 승부는 나 있던 상황이다. 그래서 김연아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생각하기 보다는 우선 자기 자신의 연기를 펼치보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만큼 차원이 다른 세계로 그녀는 이미 날아올랐다.

같은 90년생으로 라이벌이라고 불리던 연아와 마오. 
아사다도 12살 때 출전한 전일본 피겨 스케이팅 동영상을 보면 아사다도 스케이팅이 상당히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

흔히, 이번 올림픽 결과는 두 사람의 기본적인 점프 실력차와 일본언론의 막무가내식 아사다 감싸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 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일본에서 자리잡은 '트리플 악셀' 신화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아시다시피 김연아 선수의 우상이 미셀 콴이었다면, 아사다 선수는 이토 미도리였다.

이토 미도리란 누구인가. 여자 싱글에서는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일본 선수로 1998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첫 우승, 92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한 인물이다. 피겨에 투자를 계속해온 일본으로서는 이토 미도리의 폭발적인 점프력에 의한 트리플 악셀에 열광했고, 이후 피계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이로서 일본은 고난도 기술의 점부를 잘 하는 것이 피겨 스케이팅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작은 키의 이토 미도리의 파워풀한 '트리플 악셀'을 봐서인지, 천재소녀라 불렸던 아사다도 놀랍게도 12살인 2002년에 이미 트리플 악셀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엣지 판정 등 현대 피겨가 단순한 기술 뿐 아니라 정확한 점프 및 연기력, 표현력 등 종합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점수도 심판 재량 보다는 구체적 항목별 평가로 바뀐 것을 생각해보면 트리플 악셀이라는 필살기 하나로 올림픽을 도전하겠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즉, 연아와 마오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일본 언론이 만들어낸 '트리플 악셀'이라는 신화 때문이 아닐까. 점프의 교과서라 불리는 연아는 굳이 부상 위험이 큰 트리플 악셀을 시도할 필요조차 없었다. 

일본 언론은 피겨 시합 마다 김연아의 장점, 표현력이나 연기력, 점프 등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아사다에게 어떤 점이 부족한가를 지적하기 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마오가 기술이 더 높다는 식으로 사실을 호도해왔다. 

그래서, 올림픽 무대에서 트리플 악셀을 3번이나 성공시켰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 아사다에게 그래도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성과가 있다고 위로했다. 그런데, 그 트리플 악셀도 회전수 부족 논란을 계속 달고 있는 상황이다.

한참 연아와 마오가 라이벌 상황이었을 때는 한국에서도 마오를 옹하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인터넷 게시판에 마오를 옹호하는 의견을 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일본 네티즌 의견 중에서 최근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의견은 아사다 선수가 스포츠 선수로서 멋진 이유가 "미스를 겁내지 않고 고난도의 높은 기술을 도전하는 것에 있다"면서, "김연아 선수의 스타일은 현행 룰에서 메달을 따기 쉽도록 적합한 방법"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여기에는 정작 왜 아사다가 고난이도라 불리는 트리플 악셀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다. 

일본 언론이 만들어낸 '트리플 악셀'이라는 허상이 일본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이 점에서는 일본언론도 공범이다.

피겨가 장대 높이 뛰기도 아닌 마당에 한가지 기술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발상이, 재능 있던 아사다 마오를 트리플 악셀에 목매는 선수로 몰아내린 것이다. 그것을 본인이 선택했든, 주위가 그렇게 부추겼든 간에. 

따라서, 이러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한, 보통 일본사람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왜 김연아 선수에게 그렇게 많은 가산점과 세계 신기록이 쏟아지는지, 왜 아사다 선수가 비운의 2인자가 됐는지를 영영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소치 올림픽에서도 아사다 선수가 목표로 하는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출처:당그니의일본표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