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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V 지하기지냐, 수중기지냐

가자 세계로 2006. 8. 25. 00:23







이 기사는 과학동아 2006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머리는 지상에, 발은 지하에서 발진

지금으로부터30년 전에 탄생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태권V는 로봇이자 비행체다. 기지는 사람의 집처럼 로봇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태권V 기지는 로봇을 정비하는 공간이자 출동하는 발진장소이기도 하다.

기지를 설계하려면 먼저 건설부지가 중요하다. 적이 미사일을 쏘거나 전투기를 충돌시켜 공격해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원작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돔형태의 지상기지보다 지하기지가 유리하다. 지하기지는 내구성도 좋다.

지하에 구조물을 설치할 경우 대상 지역의 지질, 지하수 상태 등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미리 작은 구멍을 땅속 깊이 뚫은 뒤 코어(원통형 암석조각)를 끌어올려 맨눈으로 관찰하는 시추조사, 전류나 탄성파를 발생시켜 지층을 파악하는 물리탐사 등이 필요하다. 기지가 로봇이 출동할 현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도 안 된다. 태권V의 주요 출동지역이 서울이라면 수도권 구릉지에, 해안 부근이라면 섬에 기지를 건설하는 게 좋다. 태권V가 발진할 때 상당한 소음과 가스가 발생할 것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지가 민가에 가깝다면 주민의 민원이 빗발칠 것이다.

기지 규모는 먼저 태권V의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원작자 김청기 감독의 의견대로 태권V의 키가 56m라고 가정할 경우 누운 자세에서 정비할 때 이동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감안하면 기지의 길이는 100m 정도가 필요하다. 팔을 옆으로 뻗었을 때를 고려해 폭은 50m로 생각할 수 있다. 지하공간의 높이는 선 자세를 기준으로 최소 60m가 돼야 한다. 이 높이는 국내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역인 8호선 남한산성역의 깊이와 비슷하다.

구덩이로 팔까, 터널로 만들까

지하기지 건설방식은 크게 개착식과 터널식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착식은 해당 부지 전체를 지상에서 파내려가는 방식으로 지하철역을 건설하는 작업과 비슷하다.

먼저 기지의 벽면이 될 위치에 지상에서 구멍을 뚫어 땅을 파들어갈 깊이까지 철제 H형 기둥을 설치한다. 땅을 파내려가면서 흙으로 된 토사 부분은 길이가 긴 철 구조물(어스앵커)을 투입한 뒤 안쪽에 시멘트 같은 재료를 채워 안정시키고, 어스앵커와 철제 연결보를 이용해 흙과 모래가 무너지는 일을 막는다.

암반이 나오면 파쇄기(브레이커)로 부수거나 단단할 경우 화약으로 발파한 뒤 암반 구멍에 ‘록 볼트’(rock bolt)를 꽂아 넣거나 암반 표면에 숏크리트(shotcrete)라는 콘크리트의 일종을 뿜어서 붙여 암반을 보강한다.

또는 벽체에 해당하는 토사 부분을 미리 지상에서 파내고 콘크리트를 부어 벽을 만든 다음 땅을 파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이는 지하연속벽 공법이라고 한다.



개착식 기지는 깊은 경우 파내야 할 양이 너무 많고 수직으로 형성된 지반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고려할 수 있는 방식이 터널식 기지다. 먼저 지름 30m 정도의 원형구멍을 지표에서 70m 정도의 깊이까지 수직으로 판다. 그뒤 지상에서 30m 깊이까지는 그대로 두고 그 아랫부분에는 높이 40m, 폭 50m의 터널을 파나가면서 록 볼트, 숏크리트 등으로 보강한다. 이렇게 하면 태권V는 지하기지에서 눕거나 앉은 자세로 정비를 받을 수 있다.

태권V가 일어선 뒤에는 높이 40m의 터널과 지름 30m 정도의 원형 수직구멍을 통해 발진할 수 있다. 지상으로 연결된 케이블을 이용해 태권V가 서있는 바닥판을 끌어올린 다음 일정 높이에서 태권V를 출격시킨다. 결국 키 18m, 무게 20톤의 마징가 Z에 비해서는 훨씬 큰 기지가 필요한 셈이다.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태권V가 발진할 곳과 착륙할 곳을 구분할 목적으로 2개의 원형 수직구멍을 만드는 방법도 바람직하다. 그러면 터널의 길이는 100m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터널식 기지의 수직구멍을 파는 작업은 액화천연가스(LNG) 지하저장탱크를 건설할 때와 비슷하다. 보통 LNG 지하저장탱크의 지름은 70m이고 깊이는 50m 정도다. 태권V의 터널식 기지와 유사하게 땅을 파기 전에 일정 깊이까지 지상에서 콘크리트를 부어 벽체를 만든다. 수직구멍을 뚫은 뒤에는 터널형태로 파면서 대형 지하공간을 확장해나간다. 원유비축기지나 지하양수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터널식 지하공간은 노르웨이의 아이스하키 경기장인 요빅 경기장이다. 폭 60m, 길이 92m, 높이 25m인 이 경기장은 1993년 8월 요빅산 지하에 동굴식으로 건설됐다. 따라서 견고한 암반이 존재하는 지하에 이와 비슷한 터널식 기지를 건설하는 작업은 가능한 일이다. 앞에서 생각해본 태권V의 터널식 기지는 폭 50m, 길이 100m, 높이 40m의 터널을 포함한다.

기지가 내려앉지 않으려면

태권V의 무게는 중형차 약 1000대에 해당하는 1400톤으로 가정했다. 길이 74m에 360인승인 보잉747이 연료를 포함해 약 360톤이 나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태권V는 상당히 무겁다. 태권V 무게 때문에 기지가 내려앉지 않을까.

태권V가 서있을 때 한쪽 발에 700톤의 하중(무게)이 지면에 전달된다. 이를 발바닥 면적으로 나누면 단위면적에 작용하는 하중인 작용응력을 알 수 있다. 발바닥 면적을 20m² 정도로 가정하면 작용응력은 700톤을 20m²으로 나눈 35톤/m²이 된다. 일반적인 암반층에 놓일 경우 충분한 지지력을 얻을 수 있는 정도다.

물론 매우 연약한 암반이나 흙에 위치하면 로봇의 무게 때문에 지지력이 부족하거나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기지 구조물에 균열이 생기거나 변형될 수 있다. 보통 땅을 파면 지하수가 흐르고 있는데, 이 지하수 때문에 생기는 부력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두께로 콘크리트를 바닥에 깔고 수리에 필요한 작업대를 설치해야 한다.

기지재료로는 내구성이 높은 철근콘크리트가 가장 무난하다. 파낸 공간 바닥과 벽부분에 먼저 철근을 조립한 뒤 콘크리트를 붓는다. 지표면에 노출되는 부분은 철제구조물도 무방하다. 바닥과 벽의 두께는 원자력 발전소의 최종 외벽 두께인 1.2m면 적당하다. 적의 대규모 폭격에 견딜 수 있도록 벽체를 여러 겹으로 만들 수도 있다.

지하에 기지를 건설할 경우 직접적인 충격이 지상보다는 크지 않아 두께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지진 같은 천재지변에도 대비해야 한다. 대상 위치의 지질상태와 과거 지진발생 기록을 조사해 이에 맞는 내진 설계가 필요하다. 기지에는 태권V 격납고, 정비용 크레인 같은 기계·전기 설비, 세척과 오수처리시설이 들어가야 한다.

태권V를 지상에서 추진시키려면 지하에 있는 태권V를 지상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도르래에 쇠사슬을 감았다 풀었다 해 위아래로 옮기는 기계(권양장비)나 유압식 승강바닥판을 사용하면 된다.

이 경우 지하 깊이가 최고 2배 정도 깊어지는 게 문제다. 그래서 경사를 이용해 케이블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절반 정도 끌어올린 상태에서 태권V를 발진시키는 반지하식 추진방식도 가능하다. 즉 태권V가 출동할 때 로봇의 머리가 지상에, 발이 지하에 놓이는 방식이다.

독도 기지는 어렵다



노르웨이 요빅 경기장의 건설 전(위)과 후. 1993년

8월 요빅산 지하에 동굴식으로 건설된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터널식

지하공간이다. 폭이 60m, 길이가 92m, 높이가 25m다.
태권V가 로켓처럼 자체 추진해 발진하는 현재의 시스템이라면 남해안에 있는 외나로도 우주센터 부지에 기지를 건설하는 방법도 좋다. 외나로도 우주센터는 2007년 가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이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국내 최초로 로켓발사장, 로켓과 위성 조립장을 갖춰 국내에서도 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 이곳에 태권V 기지가 건설되면 유지보수 시스템을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리하다.

태권V 기지는 지하격납고 형식 외에 특수한 목적의 수중기지도 가능하다. 강이나 바다 밑바닥에 지하구조물을 만든 뒤 물 위까지 구조물을 연결하면 물 위에서 태권V를 발진시킬 수 있다. 수중에 발진구를 설치할 경우 출입문이 열리면 물이 기지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문제다. 또 지하가 아닌 깊은 바다 한가운데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연결해 대형 수중기지를 건설하는 방법도 매우 어렵겠지만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징가Z처럼 물이 가득 찬 풀(pool) 아래에 기지를 만들고 물을 순간적으로 배수시키면서 유압으로 바닥판에 놓인 로봇을 밀어 올려 발진시키는 방법도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만일 마징가Z가 독도를 침범한다면, 울릉도 연안에 수중기지를 건설하고 태권V를 신속히 출동시켜 독도를 지키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다. 이 경우 지상에서 해저터널을 뚫어 태권V를 위치시키고 섬의 연안에서 발진시키는 방식을 채택하는 게 좋다.

환기는 어떻게 하나

태권V가 이륙할 때 로켓엔진에서 나오는 가스와 열은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내기 힘들지만 상당한 양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처럼 기지 내에서 태권V를 발진할 경우 가스를 환기시키는 작업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오염물질도 내부에 남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지는 지하에 두되 기지 밖으로 로봇을 밀어 올리고 지상에서 추진하거나 반지하 상태에서 출격할 때 주위에 칸막이벽을 설치해 가스가 기지 내부로 못 들어오도록 차단하는 게 타당하다.

물론 기지 내에서는 세척, 절단, 용접 등 다양한 작업을 하다 보면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등의 오염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에 환기가 필요하다. 선풍기처럼 외부의 공기를 기지 내로 불어넣는 급기식과 환기팬처럼 내부의 오염된 공기를 기지 밖으로 배출하는 배기식을 함께 사용하는 급배기식을 채택하는 방법이 기지 내에 신선한 공기를 유지하는데 효과적이다.

한편 격납고의 지붕을 열고 닫으려면 어떻게 할까. 방사형으로 생긴 유압식 개폐장비가 필요하다. 철제로 된 천정덮개를 유압으로 밀거나 당기는 방식이다. 버스 출입문이나 댐의 수문을 생각하면 된다. 덮개는 돔형태가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의 렌즈 덮개 같은 평면형이 더 적합할 수 있다.



태권V 기지 후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남해안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부지.

나로우주센터는 2007년 가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태권V를 실제로 제작한다 해도 인류의 생활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데 쓰여야 한다. 앞에서 제안한 것보다 훨씬 멋진, 태권V 기지와 더 나아가 현재의 개념을 뛰어넘는 대규모 지하도시까지 건설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보지 않겠는가. 모두가 하늘을 마음대로 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비행기를 고안해 제작한 라이트 형제처럼 말이다.

기사제공= 동아사이언스 강준호 현대건설 기술개발원 부장ㆍjuno@hdec.co.kr

http://www.dongascience.com/Ds/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60728093629

강준호 부장은 | 서울대에서 암반공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7년부터 현대건설 기술개발원에 재직하고 있다. 특히 터널과 지하공간을 설계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다. 대만 고속철도 터널구간, 홍콩 지하철, 서울 지하철 9호선 등을 건설할 때 설계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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