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때

선풍기가 아니라 Air Multiplier by Dyson

가자 세계로 2010. 3. 20. 21:46

 

선풍기가 아니라 Air Multiplier by Dyson
한 여름의 필수품 선풍기.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있지만, 여전히 썰렁한 이 겨울에 무슨 선풍기냐고? 하지만 창고에 처박혀 있을 선풍기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당위는 충분하다. 에어컨처럼 한 겨울에 가격이 제일 싸다는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가 아닌, Dyson이 만든 Air Multiplier 때문이다. 기억하는가? 국내외 각종 사이트에 처음 그 이미지가 출현했을 때의 충격 말이다. 팬 없는 선풍기라니, 정말 나오는 것인지, 바람은 어떤 원리로 발생하는 하는 것인지, 가격은 또 얼마나 할지,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인지 등 다양한 관심들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얼리어답터에 한 대가 수급되었다.
빨리 보고들 싶겠지만, 그 전에 옛날 선풍기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최초의 선풍기는 160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무게 추를 이용해 기어장치의 회전축을 돌리면, 여기에 연결된 부채가 시계추 모양으로 흔들려 바람을 일으키는 원리였다. 1850년에는 모양은 현재의 선풍기와 비슷하지만, 동력원은 태엽을 감아 사용하는 형태였고 후에 그 유명한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를 사용하는 현재 형태의 선풍기를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에디슨이 위대한 발명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에디슨 이후 선풍기는 전혀 발전이 없다는 거다. 물론, 리모컨으로 풍량이나 회전을 조절하는 물건도 등장했지만, 선풍기의 기본 원리(이자 본질)인 팬을 돌려 바람을 일으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엄밀히 말하면 Dyson이 만든 Air Multiplier는 선풍기가 아니다.
다이슨 Air Multiplier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선풍기처럼 팬이 없어도 바람이 나온다는 것.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원통처럼 생긴 안쪽에 팬이 들어 있다. 간단히 작동원리를 설명하면, 측면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공기가 들어가 팬에 의해 위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 다음 커다란 원형의 틈 사이로 나오게 되는 것. 잠시 중고등학교 물리 시간을 소환해 보자. 좁은 틈을 빠져 나오는 공기는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 기억나는지? 여기에 링의 안쪽 면은 비행기의 날개와 비슷한 모양이다.
그렇다. Air Multiplier에는 항공역학이 적용되어 있다. 비행기가 공기 속을 전진하면 그 속도와 동일한 속도의 공기가 날개에 닿는다. 이 공기 흐름은 위 이미지처럼 둥근 정도가 큰 날개의 윗면을 통과할 때 속도가 빨리 지고, 거의 평면에 가까운 아랫면을 통과할 때는 속도가 느려진다. 베르누의 정리에 따라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낮아지고, 속도가 느려지면 압력이 늘어난다. 날개 윗면에 닿는 공기는 빠른 속도로 부압을 형성해 날개를 빨아올리고, 날개 아래 면에는 정압이 생겨 날개를 위로 밀어 올리게 된다. 바로 이 상하작용이 수백톤의 비행기를 하늘로 띄우는 양력. Air Multiplier는 비행기 날개의 윗면과 같은 모양을 이용해 나오는 공기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 선풍기 앞에서 해봤을 장난. 바람이 나올 때 ‘아~’하고 소리를 내면 소리가 뚝뚝 끊긴다. 이것은 풍속이 일정하지 않다는 이야기. 하지만 Air Multiplier앞이라면 소리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일정한 풍속으로 마치 장풍처럼 바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뭐.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는 팬이 없다는 것이 Air Multiplier와 선풍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일 거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고 머리카락이나 옷이 빨려 들어가는 경우도 없다. 물론 청소도 제품을 반 분해 할 필요 없이 스윽스윽 닦아주면 된다. 물론 링의 안쪽은 계속 바람을 맞으니 윗면만 청소해주면 끝. 자. 그럼 이제 안쪽을 볼 차례다.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Air Multiplier의 내부 사진이다. 위 사진처럼 아예 포장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간단한 조립이 필요하다. 안쪽 구조는 의외로 간단하다. 마치 비행기 엔진처럼 생겼다. 여기에서 위쪽으로 바람을 올려준다. 내부를 고정하고 있는 나사들은 T7의 별모양 나사기에 분리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전면의 Dyson 로고 아래에는 3개의 스위치가 있다. 가장 왼쪽부터 전원, 바람세기 조절, 회전의 순서다. 전원을 누르면 파란색 LED가 들어온다. 회전하는 각도는 좌우 90° 정도로 조금 적은 듯 하지만 돌아가는 모습이 예술이다. 상단부의 큰 링만 돌아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몸통 전체가 돌아간다. 또한 선풍기는 상하각도를 조절할 때 딸깍 딸깍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Air Multiplier는 손가락으로 스윽 밀어주면 부드럽게 움직인다.


실제로 돌려 보았다. Air Multiplier의 바람은 선풍기처럼 딱딱 끊기는 것이 아닌 ‘연속적인 바람’이다. 또한,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즉시 반응(약간의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Air Multiplier에 비하면)하는 일반 선풍기와 달리 Air Multiplier는 조절 스위치를 끝까지 확 돌려도 서서히 풍속이 증가한다. 처음 사용했을 때 15배의 강풍이라는 사전 정보 때문에 ‘얼굴에 동상이 걸릴 것만 같은 강력한 바람’을 기대했지만 스위치를 끝까지 돌려도 그만큼은 아니다. 그럼 Dyson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Dyson의 홈페이지에는 일반 선풍기보다 15배 더 강하다는 말은 없다. 공기가 아래쪽으로 들어와 15배 증폭시켜(amplifying it 15 times) 보내주고, 강한 공기의 흐름으로 주변의 공기가 함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결국 다양한 언론 매체가 Air x 15라는 문구만 보고 사실 확인 없이 쓴 기사들이다. 또한 일반 선풍기를 가까이서 쐬면 마치,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별로 기분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Air Multiplier에서 나오는 바람은 마치 자연의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팬이 돌면서 공기를 보내는 방식에는 ‘단절’이 생기지만, Air Multiplier은 이 단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바람은 상당히 멀리 간다. 바람의 ‘양’이 아니라 바람의 ‘질’에 집중한 제품이다. 그렇기에 이 Air Multiplier 하나에 기대는 것보다는 에어컨과 함께 돌려주면, 냉기 회전 시간은 선풍기보다 상당히 단축될 것 같다.
Dyson의 제품일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바로 James Dyson이 청소기를 처음 만들 때 5년간 무려 5,127개의 시제품을 직접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Dyson의 홈페이지에도 Air Multiplier 개발의 비화가 살짝 소개되어 있다. 이런 산고의 과정을 겪고 태어난 제품들이고, 그 산고만큼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제품들이니 비싸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Dyson의 청소기가 공장에서 사용하는 공기 정화 장치의 원리를 이용한 것처럼 Air Multiplier는 물리학과 항공역학에서 그 원리를 가져왔다.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혁신이란 단어가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혁신은 보도자료적 수사가 아닌, 보는 이에게 디자인과 성능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를 갖춰야 비로서 제 역할을 다 하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