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팁

(펌) 일본 현지소식 / 동경 : 일본, 강한놈만이 살아남는다. "사쿠라야 사라져"

가자 세계로 2010. 1. 19. 14:55

없어져야할 것은 없어져야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사라진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2001년 3월, 교토에서 도쿄로 막 올라온 나는 도쿄 신주쿠의 미로같은 거리를 걸으면서 새로운 살림 장만에 열중하고 있었다.

도쿄의 부도심으로 유명한 JR 신주쿠역 동쪽 출구로 나오면 전기,가전제품만을 모아서 파는 양판점이 경쟁하듯이 들어서 있었다.


- 오른쪽 큰 건물이 '사쿠라야' / 도쿄 신주쿠

대표적인 곳이 역을 나오자마자 볼 수 있는 사쿠라야. 사쿠라가 벚꽃을 의미해서 괜히 인상에 남았던 곳이다.
그리고 빅크 카메라, 요도바시 카메라. 이렇게 세곳이 서로 마주보며 경쟁하듯 신주쿠 주변을 감싸고 있다. 도쿄에 처음 올라온 나에게 이곳은 전자 일본의 상징과도 같았다.

나는 그 세곳의 체인점을 돌고 돌아 결국 사쿠라야에서 '삼성 17인치 모니터'와 '컴팩 컴퓨터'를 샀다. 사쿠라야는 내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전자제품을 산 곳으로 남았다.

그때는 일본에서 '사쿠라야''빅크카메라''요도바시카메라' 이 세군데가 가장 큰 전자양판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보니 진짜 강적은 도심 외곽지역에 포진하고 있었다.
업계 1위인 야마다 전기는 내가 6년후인 2007년 겨울 다시 도쿄로 돌아와 살았던 치바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이때 지금도 쓰고 있는 외장형 하드 디스크 등을 '야마다 전기'에서 샀다. 집 근처에는 야마다 전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일본 전자,가전 유통 업계 1위 야마다 전기

그런데 보다 많은 수익을 위해 도심 외곽을 포진하고 있던 야마다 전기는 점점 도심으로 진출, 막대한 자금력으로 시부야, 이케부쿠로 등 다른 중소 전자양판점으로 옥죄어 왔다.

내가 처음 컴퓨터 물건을 '사쿠라야'는 전자제품 유통업계 7위인 '베스트 전기'에 자회사로 07년 편입되었다.

그리고 다시 3년 가까이 흐른 2010년 지금, 사쿠라야가 올해 2월을 끝으로 전국의 모든 점포를 폐쇄한다는 뉴스가 어제 발표됐다.

옆자리 직원은 사쿠라야 폐쇄 뉴스를 접하고 "어머, 사쿠라야 포인트!" 이게 첫마디였다.

일본은 대형 양판점에서 물건을 사면 그 양판점 카드를 발급받아 10%에서 15%(가게에 따라 다름)까지 포인트로 적립을 해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즉, 사쿠라야 포인트가 5,000포인트 남아있다면, 5만엔어치 가깝게 물건을 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직 5000엔어치 물건을 공짜로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점포가 없어지면 이것도 무용지물이 된다.

문득 집에서 남은 사쿠라야 포인트를 찾으려고 하다가 관뒀다.
필요없는 물건을 들여놓지 않는게 생활신조기도 해서. 또 그것을 사러 가는 시간도 그렇고.


-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요도바시 아키바 / 전자 유통업체는 점점 대형화되고 있다.

아무튼, 일본 경제는 예전에는 1등과 2등, 3등 그리고 중소 규모의 다양한 생태계에서 10년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을 거치면서 강한 놈만 살아남는 구조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백화점 업계는 미츠코시가 이세탄에게 업무제휴라는 형태로 합병됐고, 채산성이 맞지 않는 이케부쿠로점은 폐쇄됐다.

중저가 중심의 유니클로 등 저렴한 패스트패션이 승승장구하면서 생긴 일이다. 유니클로는 불황중에도 나홀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작년말로 일본 철수가 결정된 햄버거 체인 웬디스도 결국 나홀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맥도널드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장사를 해도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양판점도 사정은 마찬가지. 도쿄 이케부쿠로는 빅크카메라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마다 전기'가 본격적으로 도심으로 진격하면서 이케부쿠로에 본점을 내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쯤 되면 결국 물량싸움, 체력전이 된다.

예전부터 일본 경제지에서는 전자제품 유통업계의 합종연횡 및 살아남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 결국 이런 분위기에서 사쿠라야가 나가떨어진 것이다.

내가 처음 컴퓨터를 샀던 신주쿠 서쪽출구 사쿠라야는 유니클로로 바뀐지 벌써 1년이 넘었다고 한다.

무언가 사라진다는 것.

내가 9년전 일본에서 처음 무언가를 샀던 기억이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사쿠라야

신주쿠 동쪽 출구에 나오면 그곳의 상징처럼 써있던 さくらや(사쿠라야)라는 문자도 3월부터는 더 볼 수 없게 됐다.

강한 놈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사쿠라야 폐쇄 소식에 왠지 기억도 영영 사라져버린 것 같은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출처:당그니의일본표류기)